점심시간이 되면 같은 장면이 반복된다. 뭐 먹지. 김치찌개는 어제 먹었고, 파스타는 좀 무겁고, 샐러드는 배가 안 찰 것 같다. 한참을 서성이다 결국 나오는 말은 "아무거나"다. 그래서 요즘은 점심 메뉴를 대신 골라 주는 앱까지 있다. 화면 속 룰렛을 돌리면 오늘 먹을 것이 정해진다. 먹을 게 없어서 못 고르는 게 아니다. 너무 많아서 못 고른다.
선택지가 많다는 건 자유라고 배웠다. 그런데 막상 선택지 앞에 서면 자유롭기보다 막막할 때가 많다. 그 막막함이 싫어서 고르는 일 자체를 다른 무언가에 맡긴다.
AI가 늘려 놓은 선택지
AI가 들어오면서 이 장면이 일로도 번졌다. 예전에는 아이디어가 없어서 막혔다. 지금은 AI에게 한 줄만 물어도 열 가지, 스무 가지 안이 바로 나온다. 블로그 제목 열 개, 사업 아이디어 스무 개, 마케팅 전략 다섯 가지. 하나를 고르려고 보면 다른 것도 괜찮아 보이고, 다시 물으면 또 새로운 안이 나온다. AI를 여러 개 띄워 놓고 이것저것 시키다 보면, 하루가 끝났을 때 많은 걸 본 것 같은데 정작 무엇을 하기로 했는지는 남지 않는다.
도구는 분명 좋아졌다. 그런데 사람은 더 산만해졌다.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는 산만함
『도둑맞은 집중력』 끝부분에서 요한 하리는 구글에서 일하다 떠난 제임스 윌리엄스의 설명을 빌려 주의를 세 가지로 나눈다. 스포트라이트는 지금 눈앞의 일에 쓰는 주의다. 이게 흐트러지면 쓰던 메일을 끝내지 못한다. 스타라이트는 멀리 있는 목표를 향해 가는 주의다. 이게 흐트러지면 올해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 잊는다. 그리고 데이라이트가 있다. 애초에 그 목표가 무엇인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아보게 해 주는 주의다.
윌리엄스는 데이라이트를 잃는 것이 가장 깊은 산만함이라고 말한다. 이 빛을 잃으면 자기가 누구이고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 알 수 없게 되고, 리트윗 같은 바깥의 단순한 신호에 매달리게 된다는 것이다. 좋아요 숫자, 조회수, 남들이 많이 고른 것도 다 그런 신호다. 점심 메뉴 룰렛은 그 작은 예다. 내 안에서 신호가 오지 않으니 바깥에서 정해 주는 대로 따른다. 점심 한 끼라면 상관없다. 그런데 일과 삶의 방향까지 그렇게 정해지고 있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레고 앞에 그냥 서 있던 아이들
책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미국의 한 초등학교가 하루 동안 교실 네 곳을 빈 상자와 레고로 가득 채우고 아이들에게 마음대로 놀게 했다. 아무도 무엇을 하라고 말하지 않았다. 교사 도나 버벡이 본 건 뜻밖의 모습이었다. 많은 아이들이 그냥 서 있었다. 다른 아이들이 노는 데 어떻게 끼어들어야 할지, 혼자서 놀이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놀 거리가 없어서가 아니었다. 무엇을 할지 정해 주는 사람이 없어서였다. 아이들에게 자유 놀이를 돌려주자는 운동을 해 온 리노어 스커네이지는 이렇게 묻는다. 아침 7시부터 밤 9시까지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한 다른 사람의 생각으로 하루가 꽉 차 있다면 어떻게 의미를 찾을 수 있겠느냐고. 무엇이 자기 마음을 움직이는지 알아낼 자유 시간이 없으면 의미를 찾을 시간도 없다고.
어른의 하루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침에 눈을 뜨면 알림이 먼저 할 일을 알려 주고, 피드가 무엇이 중요한지 알려 주고, 이제는 AI가 다음에 무엇을 하면 좋을지까지 알려 준다. 편하다. 그런데 그 편함 속에서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스스로 물어볼 시간은 점점 줄어든다. 책은 데이라이트가 돌아보고, 딴생각하고, 깊이 생각하는 시간이 꾸준히 있어야만 찾아진다고 말한다. 꽉 채워진 하루에서는 찾아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방향을 아는 사람에게 선택지는 발판이 된다
그렇다고 선택지가 문제인 건 아니다. 같은 선택지가 누구에게는 짐이 되고 누구에게는 발판이 된다. 차이는 선택지가 아니라 고르는 사람에게 있다.
AI도 그렇다.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AI에게 "뭘 하면 좋을까요?"라고 물으면 스무 가지 답을 받고 더 막막해진다. 반대로 자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아는 사람에게 그 스무 가지는 재료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가져갈지 바로 보이기 때문이다. 버리는 데 오래 걸리지 않으니 AI가 아껴 준 시간이 정말로 남는다. 방향을 아는 사람에게 AI는 자유로 가는 좋은 발판이 되고, 방향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선택지를 끝없이 늘려 주는 기계가 된다.
그래서 AI 시대일수록 더 중요해지는 질문이 있다.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AI가 대신해 줄 수 있는 일이 늘어날수록, 대신해 줄 수 없는 이 질문은 더 무거워진다.
좋아하는 것과 소중한 것
그런데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으면 사람들은 대개 좋아하는 것으로 답한다. 여행을 좋아한다, 커피를 좋아한다, 새로운 걸 배우는 걸 좋아한다. 틀린 답은 아니지만 이걸로는 고르지 못한다. 좋아하는 건 많고, 자주 바뀌고, 스무 가지 선택지를 전부 좋아 보이게 만든다. 점심 메뉴가 안 골라지는 것도 결국 다 먹고 싶어서다.
진짜 원함은 좋아하는 것과 조금 다르다. 내가 가치 있게 여기는 것,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 가족과 저녁을 함께 먹는 시간일 수도 있고, 약속을 지키는 사람으로 사는 것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런 건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선택지 앞에서 기준이 되어 준다. 스무 가지 안을 놓고 이 중 무엇이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에 더 가까이 데려가는지 물으면, 대부분은 금방 지워진다.

요즘은 인생의 의미를 찾는 일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사회다. AI가 많은 걸 대신해 주는 사회라서 더 그렇다. 그런데 리노어의 말처럼 의미는 남의 생각으로 꽉 찬 하루에서는 찾아지지 않는다. 내가 무엇에 마음이 움직이는지 들여다볼 빈 시간이 있어야 한다. 선택지는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이다. 그만큼 내가 무엇을 소중히 여기는지 알아 두지 않으면, 우리는 점점 더 많은 걸 골라야 하는 세상에서 점점 더 고르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 점심 메뉴는 룰렛에 맡겨도 된다. 삶의 방향은 그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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