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칭을 시작할 때 자주 묻는 질문이 하나 있다. 요즘 책이 잘 읽히세요? 독서 습관을 점검하려는 게 아니다. 이 질문의 답이 그 사람의 지금 상태를 꽤 정확하게 보여 주기 때문이다. 책이 읽힌다는 건 마음이 그렇게 급하지 않다는 뜻이고, 머릿속이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는 뜻이다. 반대로 마음이 급한 사람은 책을 들지 못한다. 책은 반응이 느리다. 그 사람의 손은 바로 반응해 주는 쪽으로 간다. 핸드폰이다.
왜 이 질문 하나가 그렇게 많은 걸 말해 주는지, 『도둑맞은 집중력』을 읽으면 정리가 된다.
책이 안 읽히는 건 의지 문제가 아니다
요한 하리가 프로빈스타운에서 만난 중고서점 점원 이야기가 있다. 갈 때마다 다른 책을 읽고 있길래 책을 빨리 읽나 보다 했더니, 점원이 고개를 저었다. 어떤 책이든 첫 한두 챕터를 넘기지 못한다고 했다. 그래서 자꾸 다른 책을 집어 든다는 것이다. 하루 종일 책에 둘러싸여 사는 사람도 그랬다.
낯설지 않은 장면이다. 저녁에 책을 펼친다. 몇 쪽은 잘 간다. 그러다 눈은 글자를 따라가는데 머리는 딴 데 가 있다. 낮에 못 끝낸 일, 아까 온 연락, 내일 해야 할 것. 방금 읽은 문단이 무슨 내용이었는지 기억이 안 나서 다시 읽는다. 그러다 문득 뭔가 확인할 게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지금 이 책보다 중요하다는 핑계가 마음속에서 만들어지고, 손은 이미 폰으로 가 있다. 잠깐만 보려던 것이 삼십 분이 되고, 책은 펼쳐진 채로 그 자리에 있다. 이런 저녁이 몇 번 반복되면 책을 아예 안 집게 된다. 그러면서 자기를 탓한다. 집중력이 없다고, 끈기가 없다고. 그런데 이게 바로 생각이 복잡하다는 것이다. 잡생각이 글자 사이로 계속 끼어들고, 폰을 확인하는 게 더 급하다는 핑계가 저절로 만들어지는 상태. 책이 안 읽히는 건 그 상태가 겉으로 드러난 것이다.
노르웨이의 연구자 안네 망엔은 이걸 다르게 본다.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훈련의 문제라는 것이다. 책은 한 줄을 따라가며 한 가지에 오래 붙어 있도록 사람을 훈련시킨다. 화면은 반대로 훈련시킨다. 필요한 것만 빠르게 훑고 넘어가도록. 문제는 하루 몇 시간씩 화면에서 익힌 훑기가 종이로 새어 나온다는 것이다. 책을 펼쳐도 눈은 화면을 볼 때처럼 움직인다. 훑으니 재미가 없고, 재미가 없으니 덜 읽고, 덜 읽으니 더 못 읽게 된다.
그러니까 책이 안 읽히는 건 그 사람이 게을러서가 아니다. 요즘 무엇에 오래 노출돼 있었는지의 결과다. 마음이 급한 것도 성격이라기보다 그 훈련의 결과에 가깝다.
미디어가 메시지라는 말의 뜻
마셜 매클루언의 유명한 말이 있다. 미디어가 메시지다. 처음 들으면 무슨 뜻인지 잘 안 잡히는데, 하리의 설명이 쉽다. 새로운 기술은 정보를 한쪽에서 넣으면 다른 쪽으로 그대로 나오는 관이 아니다. 색이 들어간 안경이다. 쓰고 있는 동안에는 세상이 그 색으로 보이고, 오래 쓰면 그게 원래 세상의 색이라고 믿게 된다.
인스타그램을 삼십 분쯤 넘기고 난 뒤를 떠올려 보면 된다. 무슨 게시물을 봤는지는 거의 기억나지 않는데, 이상하게 내 하루가 초라해 보인다. 누가 그렇게 말한 적은 없다. 그런데 남들의 가장 잘 나온 순간들을 연달아 본 눈은 자기 하루를 그 기준으로 재기 시작한다. 인스타그램이 하는 말은 하나다. 중요한 건 겉으로 어떻게 보이느냐다. 페이스북이 하는 말도 비슷하다. 삶이란 남에게 보여 주려고 편집한 하이라이트이고, 그걸 서로 봐 주는 사이가 친구라고. 이 말들은 화면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다. 잘 찍힌 사진들과 그 아래 하트 숫자가 매일 그 말을 대신한다.
종이책을 삼십 분 읽고 난 뒤는 다르다. 뭔가를 천천히 따라간 느낌이 남는다. 책이 하는 말도 어디에 적혀 있지는 않지만 분명히 있다. 삶은 복잡하니 이해하려면 속도를 늦춰야 한다고, 한 가지에 오래 붙어 있는 경험은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도 나만큼 복잡한 속이 있다고. 하리는 자기가 트위터에서 가장 잘나갔을 때가 인간으로서 가장 쓸모없었을 때였다고 고백한다. 관심을 갈구했고, 단순했고, 독설을 잘 퍼부었다고. 트위터라는 안경을 오래 쓴 결과였다.

그래서 한 권을 오래 붙잡는다
북인사이트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깊이 있는 생각, 생각의 확장,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 이 셋을 위해 모이는데, 사실 책의 내용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한 권을 몇 주에 걸쳐 붙잡고 있는 형식 자체가 하는 일이 있다. 그 형식은 속도를 늦추라고, 한 가지에 오래 머물라고, 남의 생각을 끝까지 들어 보라고 매주 코칭한다. 종이책이라는 안경을 몇 주 동안 벗지 않게 만들어 두는 셈이다.
책이 잘 읽히느냐는 질문이 상태를 재는 질문이라면, 함께 한 권을 오래 읽는 일은 그 상태를 되돌리는 훈련이다. 훑는 훈련을 오래 받아 온 사람에게 반대 방향으로 훈련할 자리를 주는 것이다.
보기만 하지 않고 적는 시간
플로우노트도 같은 이유로 한다. 화면 앞에서 우리는 대부분 받기만 한다. 보고, 넘기고, 또 본다. 들어오는 건 많은데 나가는 게 없다. 그런데 차분히 앉아 자기 생각을 글로 적어 보는 시간이 있으면 그것만으로 정리가 된다. 머릿속에 있을 때는 잡스러운 것들이 다 섞여 있는데, 글로 적으면 밖으로 꺼내져서 객관적으로 볼 수 있고, 꺼내고 나면 남은 생각이 명료해진다.

여기서도 같은 일이 일어난다. 빈 노트 앞에 앉으면 어쩔 수 없이 내 생각을 꺼내게 되고, 피드 앞에 앉으면 어쩔 수 없이 남의 것을 받기만 하게 된다. 노트는 내가 쓰지 않으면 비어 있고, 피드는 내가 아무것도 안 해도 계속 채워진다. 그러니 하루 중 어느 쪽 앞에 더 오래 앉아 있느냐가, 그 사람이 생각을 꺼내는 사람이 되느냐 받기만 하는 사람이 되느냐를 정한다.
다시 그 질문으로
그래서 책이 잘 읽히느냐는 질문은 두 가지를 동시에 묻는 질문이다. 지금 마음이 얼마나 급한가, 그리고 요즘 무엇에 오래 노출돼 있었는가. 답이 "잘 안 읽혀요"라면 의지를 탓할 일이 아니다. 어떤 안경을 오래 쓰고 있었는지 먼저 돌아보면 된다. 그다음에 반대 방향의 형식에 자기를 놓아 두면 된다. 한 권을 오래 붙잡는 자리, 빈 종이 앞에 앉는 시간. 우리는 오래 본 것의 결을 닮아 간다. 그러니 무엇을 오래 볼지는 골라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