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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OWLETTERVol.0042026.09.1010 min read

설거지할 때 유튜브를 끌 수 없게 된 이유

여러 일을 동시에 해내는 동안, 나는 왜 아무 일에도 온전히 머물지 못하게 되었을까.

북인사이트다시플로우 편집부
오후 빛이 드는 부엌에서 남성이 스마트폰 영상을 켜 둔 채 설거지하는 편집 일러스트레이션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시간에도, 우리는 먼저 화면을 켠다

요즘 나는 AI를 여러 개 띄워 놓고 일한다. 처음에는 하나였다. 코드를 짜거나 콘텐츠를 만들 때 AI 하나를 돌려놓고 결과를 기다렸다. 그런데 그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했다. 몇 분씩 멍하니 화면을 보고 있는 게 아까워서 다른 창을 열고 다른 AI에게 다른 일을 시켰다. 그러다 서너 개가 됐고, 많을 때는 다섯 개까지 갔다. 하나가 돌아가는 동안 다른 하나를 확인하고, 그사이 또 하나가 끝나 있다.

겉으로 보면 효율적이다. 놀리는 시간이 없으니까. 그런데 하루가 끝나면 이상하게 머리가 복잡했다. 분명히 정신없이 뭔가를 많이 했는데 무엇을 했는지가 잘 잡히지 않았다. 서로 다른 콘텐츠를 왔다 갔다 하느라 어느 하나에도 온전히 있지 못한 느낌이었다. 나는 이제 설거지를 할 때도 유튜브 없이는 못 한다.

『도둑맞은 집중력』을 읽으면서 이 두 장면이 하나로 이어졌다.

세상이 빨라지면 사람은 여러 개를 동시에 한다

저자 요한 하리가 만난 덴마크의 물리학자 수네 레만은 세상이 정말로 빨라졌는지를 쟀다. 트위터에서 하나의 화제가 인기 순위에 머무는 시간은 2013년 17.5시간에서 2016년 11.9시간으로 줄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건 130년 전 책들까지 거슬러 올라가도 같은 곡선이 나왔다는 점이다. 인터넷이 문제가 아니었다. 원인은 하나, 정보의 양이었다. 1986년에 한 사람이 하루에 접하는 정보가 신문 40부 분량이었다면 2007년에는 174부였다.

정보가 늘면 사람은 어떻게 하는가. 다 처리하려고 든다. 그래서 여러 개를 동시에 한다. 멀티태스킹은 게으름의 반대말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빨라진 세상에 적응하려는 몸부림에 가깝다. 내가 AI를 여러 개 띄운 것도 그랬다. 기다리는 시간을 그냥 두는 게 뒤처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은 그 정보의 양을 AI가 몇 배로 불리고 있다. 레만의 모델에서 유일한 변수가 정보량이라면, 생성형 AI는 그 변수를 직접, 그리고 아주 빠르게 키우는 물건이다. 책은 2022년에 나와서 이 대목을 다루지 않지만, 곡선이 어디로 갈지는 짐작이 어렵지 않다.

멀티태스킹이 실제로 하는 일

신경과학자 얼 밀러는 멀티태스킹을 망상이라고 부른다. 뇌는 한 번에 한두 가지 생각밖에 만들지 못한다. 우리가 멀티태스킹이라고 부르는 건 실제로는 아주 빠르게 이것저것 사이를 오가는 저글링이다. 그리고 저글링에는 대가가 따른다. 옮겨 갈 때마다 느려지고, 되짚다가 실수하고, 무엇보다 새로운 생각이 이어질 틈이 사라진다. 카네기멜런 대학 실험에서는 시험 중에 문자를 받은 학생들의 점수가 평균 20퍼센트 낮았다.

책상 앞의 남성이 작은 화면 모양의 공 다섯 개를 저글링하다 하나를 놓치는 편집 일러스트레이션
여러 일을 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일을 여러 번 다시 시작하고 있었다

내 경우로 옮기면 정확히 맞는다. AI 서너 개를 오가는 동안 나는 서너 가지 일을 한 게 아니라 하나의 일을 서너 번씩 다시 시작하고 있었다. 머리가 복잡했던 건 많이 해서가 아니라 계속 전환해서였다.

설거지 이야기는 심리학자 글로리아 마크의 한 문장으로 설명된다. 오래 방해받으며 산 사람은 외부의 방해가 사라져도 스스로를 방해한다. 설거지는 아무도 나를 방해하지 않는 시간이다. 그런데 그 조용함이 견디기 어려워서 내가 먼저 유튜브를 켠다. 방해가 습관이 되면 방해가 없는 상태가 불편해진다. 신경과학자 애덤 가잘리는 뇌를 나이트클럽에, 전전두엽을 문지기에 빗댄다. 무언가를 걸러내는 것 자체가 힘을 쓰는 일이라서, 아무것도 안 하고 버티기만 해도 비용이 든다는 뜻이다. 설거지 20분 동안 유튜브를 안 켜고 있는 게 왜 그렇게 힘든지, 이걸로 설명이 된다.

세상은 스키너의 방식으로 관심을 가져간다

여기까지가 내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면, 바깥에는 이걸 이용하는 쪽이 있다. 책은 심리학자 스키너의 실험을 든다. 배고픈 비둘기에게 아무 동작에나 모이를 주면 비둘기는 그 동작을 강박적으로 반복한다. 언제 보상이 올지 모르기 때문에 멈추지 못한다. 인스타그램을 설계한 사람들은 셀카에 하트를 주면 사람도 비둘기처럼 강박적으로 찍게 될지 물었고, 답은 우리가 아는 대로다. 좋아요, 알림, 빨간 배지, 다음 편 자동 재생. 전부 같은 원리로 움직인다.

이 방식을 세상이 불편해하기 시작했다는 신호가 지난 8월 말에 나왔다. 메타가 청소년의 소셜미디어 중독을 부추겼다는 소송을 최대 약 180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25조 원에 합의한 것이다. 합의금은 10년에 걸쳐 지급된다. 고치기로 한 항목을 보면 하나같이 스키너다. 좋아요 숫자를 기본적으로 가리고, 하루 두 시간으로 제한하고, 밤에는 일부 기능 사용을 막고, 등교 시간에는 알림을 끈다. 2022년에 책이 이론으로 쓴 것을 4년 뒤에 주정부들이 합의 조항으로 옮겨 적은 셈이다. 다만 이건 미성년자에게만 해당된다. 성인의 피드와 추천과 무한 스크롤은 그대로다. 사회가 대신 막아 주는 건 거기까지고, 나머지는 각자 지켜야 한다.

몰입의 세 가지 조건

그런 세상에서 미하이 칙센트미하이가 말하는 몰입을 경험하기는 쉽지 않다. 몰입은 하고 있는 일에 빠져들어 시간이 사라지는 상태다. 칙센트미하이가 관찰한 시카고의 화가들은 그림을 그리는 동안 시간을 잊었고, 완성하면 자랑하지도 칭찬을 구하지도 않고 그림을 치우고 다음 그림을 시작했다. 보상이 눈앞에 있는데 무관심했다. 스키너의 방식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사람들이다.

주변 사물이 흐려진 작업실에서 남성이 이젤 앞 그림에 몰두하는 편집 일러스트레이션
되찾는 방향은 비둘기의 반대편, 화가 쪽이다

하리는 몰입의 조건을 셋으로 정리한다. 목표가 하나일 것. 나에게 의미 있는 일일 것. 내 능력보다 조금 어려울 것. 셋 중 하나만 무너져도 몰입은 오지 않는다. 그러니 되찾는 일은 나에게 어느 조건이 자주 무너지는지 아는 데서 시작한다. 내 경우는 첫 번째다. AI 다섯 개는 목표가 다섯이라는 뜻이고, 그 순간 몰입의 첫 조건은 이미 깨져 있다.

두 가지를 더 적어 둔다. 하나는 몰입이 여유 있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칙센트미하이의 형 모리츠는 시베리아에서 살아 돌아와 평생 철도 화부로 일했고, 80대에 처음으로 좋아하는 일을 하다가 시간을 잊었다. 다른 하나는 몰입이 바로 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리 자신도 소설을 쓰며 몰입을 시험했는데, 첫날은 힘들었고 즐겁지 않았다고 적는다. 몰입이 온 건 4주째였다. 이걸 모르면 사흘 만에 그만두고 다시 여러 개를 띄우게 된다.

빼앗긴 집중력은 유튜브를 끊는다고 돌아오지 않는다. 하리도 스마트폰을 두고 떠난 지 2주 만에 무너졌다. 빈자리를 만드는 것과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다른 일이고, 채우는 방법은 강화가 아니라 몰입이다. 그러니 첫걸음은 설거지할 때 유튜브를 끄는 게 아니라, 하나의 일에 하나의 목표로 붙어 있는 시간을 하루에 한 번은 만드는 것이다. 세상은 계속 빨라질 것이고, 그 속도에 맞추려고 여러 개를 동시에 하는 순간 우리는 비둘기 쪽으로 간다. 되찾는 방향은 그 반대편, 화가 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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