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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가 지도가 되는 순간의 모든 편지
FLOWLETTERVol.0022026.08.287 min read

나만 뒤처진 것 같을 때

부러움을 등수로 읽으면 조급함이 남고, 단서로 읽으면 방향이 남습니다.

상처가 지도가 되는 순간다시플로우 편집부
밝은 종이 위 코발트와 라일락 수채로 그린 늦은 밤의 손끝과 휴대폰 불빛
축하는 진심이었는데, 마음은 아직 화면 앞에 남아 있다

목요일 밤 열한 시. 자려고 누웠다가 휴대폰을 한 번 더 연다.

단톡방에 사진이 하나 올라와 있다. 동갑내기가 자기 이름을 건 작은 사무실을 열었다고 한다. 간판, 창가의 화분, 아직 빈자리가 많은 책상 몇 개. 축하한다는 말이 벌써 열 몇 개 달려 있다.

나도 축하를 보낸다. 진심이다. 이모티콘까지 하나 골라 넣는다.

그리고 화면을 닫는다.

닫았는데 잠이 오지 않는다. 천장을 보다가 아까 그 사진을 다시 연다. 간판 글씨체를 들여다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내가 왜 이러지.

축하는 진심이었는데 왜 잠이 안 올까

이 마음에도 이미 이름이 있다. 질투.

그리고 그 이름이 붙는 순간 할 일도 정해져 있다. 덮는다. 못난 마음이라고, 다 큰 어른이 이런다고, 남의 좋은 일에 이러면 못쓴다고.

덮는 건 빠르다. 그런데 덮으면 그 아래 있던 것까지 같이 덮인다.

비교하지 말라는 말은 많이 듣는데, 맞는 말인데도 잘 지켜지지는 않는다. 사람은 혼자서 자기 위치를 알 수 없게 되어 있어서, 옆을 아예 보지 않고 사는 방법 같은 건 없다. 그러니 안 하는 쪽을 애쓰기보다 다르게 하는 쪽을 궁리하는 편이 낫다.

사람은 아무 삶에나 반응하지 않는다. 같은 단톡방에서 누군가는 차를 바꿨고 누군가는 이사를 갔고 누군가는 승진을 했다. 그 소식들에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유독 이 사진 앞에서만 잠이 오지 않는다.

그러면 물을 것이 하나 생긴다. 저 사진의 무엇이 나를 붙잡았나.

The Inner Map

등수로 읽을 때와 단서로 읽을 때

원하는 것을 적어보면 목록은 금방 나온다. 좋은 직장, 안정적인 수입, 인정받는 자리, 자유로운 시간. 그런데 하나를 골라 왜냐고 물으면 답이 한 박자 늦게 온다.

답이 한 박자 늦는 것은 그 이유가 자기 안에 있지 않아서다.

문학이론가 르네 지라르는 사람의 욕망이 원하는 것과 자신 사이에서 곧장 생기지 않고, 그것을 먼저 원한 다른 사람을 거쳐서 온다고 봤다. 누가 갖고 싶어 하는 것을 보며 그것이 가치 있어 보이고, 누가 부러워하는 삶을 보며 그 삶이 성공처럼 느껴진다.

줏대가 없다는 이야기와는 다르다. 사람은 타인을 통해 세계를 배운다. 아이는 주변을 보며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두려워할지 익히고, 어른도 다른 삶을 통해 가능성을 발견한다. 모방은 배움의 시작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밖에서 들어온 욕구를 한 번도 검토하지 않은 채 자기 운명처럼 오래 좇으면, 배움은 베끼기에서 멈춘다.

그래서 같은 부러움도 읽는 방식에서 갈린다.

등수로 읽는다 — 저 사람이 나보다 앞섰다
신호 · 그 계정을 다시 들어가 본다. 나이를 계산해본다. 내가 늦어진 이유를 떠올린다.
남는 것 · 조급함. 그리고 남의 목표.

단서로 읽는다 — 나는 저 중 무엇에 반응했나
신호 · 부러운 것을 하나씩 지워본다. 다 지우고도 남는 게 있다.
남는 것 · 내가 반응하는 것 하나.

서열을 매기는 순간 부러움은 독이 되고, 무엇이 부러웠는지 해석하는 순간 자료가 된다.

사진에 안 나오는 시간

막상 하나씩 지워보면 생각보다 빨리 정리된다.

간판이었나 하면 그건 아닌 것 같다. 사무실이었나 하면 매달 나갈 임대료를 떠올리는 순간 그것도 지워진다. 사람들 앞에 서는 일이었나 하면, 그건 오히려 피곤한 쪽에 가깝다.

하나씩 지워보니 뜻밖의 것이 남는다.

자기 이름으로 내놓았다는 것. 그 일에 자기 해석이 들어가 있다는 것.

부러움은 통째로 온다. 맨 위에는 눈에 보이는 것이 있다 — 간판, 공간, 수입, 이름. 그 아래에는 그 사람이 매일 실제로 하는 일이 있다. 아무도 없는 아침에 혼자 앉아 있는 두 시간, 거절당하고 다시 거는 전화, 열 번 고쳐 쓰는 첫 문장.

단톡방에 올라오는 것은 언제나 맨 위다.

그래서 부러움을 읽을 때는 사진에 안 나오는 시간부터 본다. 유명한 작가가 부러운데 혼자 방에 앉아 몇 시간을 보내는 일이 내키지 않는다면, 원한 것은 글쓰기보다 자기 생각이 존중받는 자리였는지 모른다.

하루의 감정으로 결정하지는 않는다. 한 사람을 향한 마음보다, 여러 삶에서 거듭 같은 자리에 반응했는지를 본다. 오늘 밤의 기분 하나로 사표를 쓰지는 않는다.

오늘의 작은 기록

오늘 밤, 세 줄

민트와 살구색 수채 선화로 그린 계약서와 식은 커피가 놓인 평범한 낮의 책상
사진 밖의 시간은 대개, 평범한 화요일의 얼굴을 하고 있다

부러운 사람 하나를 떠올리고, 그 사람의 화요일 오후 세 시를 세 줄로 적어본다.

사진에 안 나오는 시간이다. 계약서를 넘기고 있을지, 답 없는 문의에 다시 메일을 쓰고 있을지, 다음 달 나갈 돈을 계산하고 있을지. 아는 만큼만 적으면 되고, 틀려도 상관없다.

다 적고 나서 읽어보고, 그중에 나도 해보고 싶은 줄이 있으면 거기에 표시한다.

표시가 있으면 그 줄이 단서다.

표시가 하나도 없으면, 부러웠던 것은 그 일 자체가 아니다. 그 일이 그 사람에게 주고 있는 무언가다. 그게 무엇인지는 다음에 찾아도 늦지 않다.

이 표시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몇 사람을 이렇게 적어보면 표시가 몰리는 자리가 생긴다. 한 사람을 향한 부러움은 그날의 기분이지만, 여러 사람에게서 같은 줄에 표시가 찍히면 그때부터는 자료가 된다.

부러워한 게 부끄러운 일은 아니다

부러움이 올라왔다고 해서 속이 좁은 사람인 것도, 축하가 거짓이었던 것도 아니다. 두 마음은 원래 한집에 산다.

사람은 아무 삶에나 반응하지 않는다. 그러니 반응했다는 건 그 자리에 나와 관계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다. 그것을 가장 먼저 알아차리는 감각인데, 목소리가 커서 자주 오해를 산다.

오늘 밤 무엇을 시작하지 않아도 되고, 그 사람을 따라잡을 계획을 세울 필요도 없다.

세 줄만 적어두면 된다.

그게 두 번째 지도 조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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